용비불패

복화술을 비롯 엄청난 내공을 겸비한 최고의 현상금 사냥꾼 "용비" 대륙을 누비던 그가 어느 날,수배중이었던 악당 "사흑련"의 살인마였던 천잔왕 구휘를 체포하게 된다. 그의 부하 일당과 함께 여러번의 공격을 받지만, 오히려 실력을 발휘하게 되는 용비...호북성으로 향하던 도중 물결을 타고 떠 내려오고 있던 동자를 구하게 된다. 호북성으로 데려다 주는 대신으로 받은 목걸이. 그 목걸이가 천강 3대 기보인 "금화경"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목숨이 더욱 위태로워 지는데...


젠장. 이 발칙한 만화 같으니.
정말이지 머리털 나고, 만화책 보면서! 그것도 싸나이-_-들의 호쾌하지만 야만적이기까지 한 무공 대련이 전부이다시피 한 무협 만화를 보면서 울어보기는 또 처음이다. 매장마다 죽어나가는 사람 부지기수에, 한심하기 짝이 없는 욕심, 허황되고 허무한 인간사, 그것이 무협만화의 8할이건만 대체 이 작품은 어째서 나로 하여금 주책맞게 눈물질 하게 만드느냔 말이다.
아놔, 쪽팔려서 살 수가 없다, 증말. OTL

참 신기한 것은, 내게 이 작품을 추천해 준 이가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다. 순전히 우연한 기회로 접하게 된 작품이 바로 이 '용비불패'다. 그 우연한 기회가 어떤 식이었던고 하니!
단지 무협만화 작품으로는 꽤나 유명해서 나조차 알고 있는 '열혈강호'를 보다가, 40권이 넘어가는데도 도무지 완결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혼자 짜증을 퍽퍽 내다가, 홧김에 완결이 난 작품을 찾다보니 눈에 띄길래 대충 들여다보다가, 그 길로 완결까지 다 보게 된 케이스랄까? -_-; 마지막 권의 마지막 장의 일기를 빙자한 작가후기를 보면서 혼자 내심 기겁을 했다. 스물 세권이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을 한자리에서 독파를 해버렸으니, 거기다 매 페이지마다 숨넘어가게 만드는 코믹 요소들이 넘쳐나는 이 개그만화를 보면서 눈물 콧물 죄다 질질 짜댔으니 기가 막힐 밖에. 아무래도 나이가 들긴 든 모양. 눈물이 많이 헤퍼졌기 때문인지도.... =_=

글쎄, 구태여 이렇다 할 감상을 하고 싶은 건 아니다. 왜 슬펐는지, 왜 눈물 지었는지를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다.
그냥, 재미있었다. 결코 짧지 않은 분량의 내용을 유기적으로 잘 연결시킨 스토리가 좋았고 공들인 흔적이 곳곳에서 보이는 그림체가 마음에 들었으며 깔끔한 마무리도 만족스럽다.
정형화된 듯하면서도 개성적인 캐릭터들 역시 인상 깊다. 비록 전혀 진지하지 못한 성격이지만 그 누구보다 강하고 그 누구보다 처절하고 서글픈 과거, 상처, 그리고 한(恨)을 가진 이중적 캐릭터라니, 왠지 매치가 잘 되지 않는다. 근데 그래서 어울린다, 너무나도.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없을 만치의 가벼운 개그 속에서도 확고하게 자리잡아 가슴을 후벼대는 슬픔은 그야말로 압권이라고 해도 과찬은 아닐 터.
가장 뇌리에 박혀온 대사는 아무래도...
"그래도 너희는...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 싸웠지만...우린 그 인간이라는 것이 되기 위해 싸웠다."
이 부분이 아닐까. 왠지모를 울컥함 때문에라도 한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만 같다.
한국 무협만화계에서 이만한 작품 찾기 힘들다, 는 평가가 어디서부터 기인했는지 또한 어렴풋하게나마 알 듯도 하다.

매번 책방을 들락거리며 스물 세권의 책을 나르는 것도 귀찮은 고행. 이 기회에 깔끔하게 한 질 장만해 볼까 하는 생각이 솔솔 들고 있는 즈음이다. 김혜린님의 '비천무' 이후 소장하고 싶어 안달난 만화 작품은 '용비불패'가 유일하다. 무협에 빠져 허우적대기에는 이미 노년기(헉!)에 접어들고 있지만 그래도 가끔씩이라면 나쁘지 않을 테니까.

쵝오!

by 시니컬콩 | 2008/08/26 05:28 | Cartoon | 트랙백 | 덧글(2)

말할 수 없는 비밀 - 2007, 중국

(周杰倫 , 桂綸鎂)


예술학교로 전학 온 상륜(周杰倫 분)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피아노에 천부적인 소질을 보인다. 학교를 둘러보던 중, 신비스러운 피아노 연주가 흘러나오는 옛 음악실을 발견하게 되고, 그곳에서 샤오위(桂綸鎂 분)라는 사랑스러운 소녀를 만난다. 그들은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둘 사이에는 애틋한 마음이 싹튼다. 그러나 상륜이 샤오위를 더 알고 싶어할 때마다 그녀는 비밀이라고 일관하며 사라지곤 하는데….


태생이 음지-_-여서인지 아니면 인생이 비주류여서인 건지. 이상하게 난 뭘 봐도 주인공들보단 조연들이 더 인상에 남고 마음에 드는 경우가 많다. 100% 라는 건 뻥이고 대략 그런 비율이 좀 높다.
예전에 '황후화'라는 영화가 있었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신다는 주윤발과 공리가 각각 남녀 주연을 맡아 화제에 올랐으나, 최소한 한국에서는 흥행 참패를 했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사실 나도 꽤 호기심을 갖고 보긴 했지만, 다 보고 나오면서 친구와 "황후화가 아니고 황금화 아니야?"라는 우스갯 소리를 한 기억이 있다. 머릿속에 남은 건 오직 황제 부부의 황금색 옷 밖엔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땐 그렇게 생각했었다. 근데 하나가 더 있더라. 공리의 아들 역할, 즉 둘째 황자 역할을 맡아 열연했던 배우 말이다. 그 젊은 조연 배우의 이름이 주걸륜이었다. 잘 생겼다기 보다는 좀 개성적인 외모고, 중국 영화를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연기를 잘 하는 건지 아닌 지도 감이 잘 안 오고, 그냥 보기에 제일 인상 깊었다. 가장 처절한 죽음을 맞는 인물을 연기해서였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주연인 두 배우보다 조연인 주걸륜이 더 마음에 들었던 거다.;
사실 관람 내내 눈길은 갔지만, 솔직히 주걸륜이 나오는 영화를 그것 하나 밖에 본 적이 없어서 큰 관심은 안 뒀었다. 그냥 그런 배우가 있나 보지, 뭐. 그게 전부였을 뿐 따로 시간과 정성 들여 검색을 해본다거나 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 청년, 아시아권에서는 못지 않게 꽤 유명하댄다. 가수로서 음반을 천만장 씩 팔아 치우고 배우로서 여러 영화에 출연도 하고, 중화권에서의 인기로는 거의 선두주자라는군. 이렇게 유명인사이신 줄 누가 알았겠나? 그래서 좀 놀랐다.
그리고 이번에 이 작품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보고나서 쫌 더 놀랐다. 이 청년의 감독 데뷔작이란다. 뿐이게? 각본에 주연까지, 다 했단다. 피아노 연주마저도 직접 했단다. 연주 실력이 참으로 기특하다. 정말 혼자 다 해먹은 거다. 그야말로 중국의 멧 데이먼.; 이 영화가 중화권에선 엄청난 대박을 터트렸다는데('엽기적인 그녀'의 흥행 기록을 깨고 작년 한 해 색계에 이어 두 번째의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고 한다) 감독이자 각본가이자 주연배우로서, 이 청년 돈 좀 만졌지 싶다(잉?). 갑자기 마구마구 팬질-_-;을 하고 싶어지는 심정 억누르느라, 오밤중에 고령한 누님;이 애 좀 먹었다.

어쨌거나 각설하고.
이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은 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본 듯도 하고 왠지 익숙하기도 하고, 분명 앞으로 나올 내용이라던가 결말 같은 것이 대충 짐작이 되어 버리는 취약점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의 가장 주요한 부분이 반전이기 때문이다.
본래 반전이란 가장 극적인 구성 장치이면서도 그 범위가 좁기 마련이다. 최대한 실리적으로 사용되지 못하면 그 역효과로 인해 작품 자체가 망가진다. 관객들의 호평과 혹평을 아주 극명하게 갈라놓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달까. 걸작이라 평가받는 작품들 중 반전 영화가 상당수 되는 것도 그 이유일 테고, 반전영화지만 형편없는 졸작이라 평가 받는 것들도 꽤 되는 이유 역시 그럴 테다.
그런데 좀 우습다. '말할..'은 걸작이라 하기엔 심히 모자라고 졸작이라 하기에도 선뜻 내키지가 않는다. 괜찮은 영화와 별로인 영화 사이에서 애매하게 줄타기를 해서 사람 당황시킨다. 반전 효과가 두드러지지 않아서? 아니, 오히려 반대다. 데뷔작이라는 핸디캡을 감안한다면 주걸륜은 반전을 꽤 유용하게 써먹었다. 다 보고나서 아, 그렇구나! 한마디쯤은 흘리게 만들어준다. 그럼에도 어중간하게 느껴짐은 물론 취약점으로까지 생각되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그 반전의 과정이며 내용과의 맞물림이 과거 있어왔던 반전 영화들 중 몇몇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스토리상의 전개와 얼개 또한 다른 작품을 연상시키는 구석이 뚜렷하다. 요는, 무슨무슨 영화들과 비슷하다는 것(말하고 싶지만 그 제목들 만으로도 최강의 스포일러가 되어 버리기에ㅜ_-).
이렇게 되니 반전의 효과가 빛바랜다. 아, 그렇구나! 라고 감탄을 터트리긴 하지만 단지 그 뿐. 명색이 반전 영화인데, 전체적인 느낌에서 반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해야 30% 정도? 이래서야 어디 가서 반전이 있다고 말하는 것조차도 쪽팔린다. 초반에 다 들통나는 반전이란 그저 평범한 트릭에 불과할 뿐이니까. 좀 더 개성적인 반전을 사용해 주었다면 더할 나위 없었을 텐데 말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어떤 영화일까?
최소한 내겐 예쁜 영화였다. 반전이라는 양날의 검 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보니 '말할 수 없이' 예쁘다. 하늘이 예쁘고 잔디밭이 예쁘며 공기가 예쁘다. 뿐인가? 천재 피아노 소년인 상륜도 예쁘고 상륜이 첫눈에 반한 샤오위도 예쁘다. 하다못해 상륜을 짝사랑하는 다른 여자아이까지도 예뻐 죽겠다. 두 사람의 공통점이자 매개체, 두 사람을 촘촘하게 엮어 사랑하게끔 만들어주는 피아노 선율은 쉴 새없이 사람을 홀린다.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안 들리는 때가 없다. 귀에 익숙한 고전 곡들부터 세련된 크로스오버 곡들까지 다양하기도 하다. 피아노 선율과 함께 두 사람을 쫓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요컨대, 상륜과 샤오위는 사랑에 빠진 풋풋한 청춘들이라는 거다.
이제 1년만 지나면 그들은 어른이 된다. 어른과 아이의 경계점에서 일생 가장 눈부시고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유, 예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너무 예뻐서 스토리의 허술한 구멍, 너무나도 간략하고 중국인 특유의 표현 일색이라 뇌리에 박히지 못한 채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대사들, 부족한 당위성, 뜬금없는 결말 등등이 하나도 안 밉다. 성인 남녀의 원숙한 사랑을 그렸더라면 정말 야단 날 뻔 했다. 용납 안 됐을 거다, 절대로.
상륜과 샤오위가 고등학교 졸업반이라는 건 참으로 영리한 설정이다. 그 나이였기에 첫사랑의 열병이 더욱 절실하고 애달팠을 것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포기하고 사랑을 택할 수 있는 용기와 열정이란, 나이가 들면 들 수록 생각없는 무모함으로 변질되고 말기 때문에. 그래서 생뚱맞은 결말이 되려 더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더불어 소재 및 소품 선택도 적절했다. 음악이라니, 게다가 피아노라니. 고풍스럽고 멋지고, 또 우아하다.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낡은 음악실에 둘이 나란히 앉아 즐겁게 연주하는 장면은 참으로 흐뭇하기 짝이 없다. 누렇게 변색 된 피아노 건반위를 가볍게 뛰어다니는 손가락이 어쩜 그리 인상적인지. 보는 내내 두근두근 한다.
이렇듯 이 영화는 반전에 할애해 줄 수 있는 30%의 나머지 70%를 설정으로 먹고 들어간다. 억지라고? 아무렴, 억지 맞다. 억지도 그만한 억지가 없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고딩들의 어설픈;; 연애놀음을 낭만 가득한 사랑으로 승화시키려 이 사건 저 사건 마구 섞어 놓았더라면 제대로 망했을 영화가 사소한 몇몇 설정으로 호감도 급상승 된다. 첫 감독작품이라는데 너그럽게 봐줄 수도 있는 문제. ^^

앞서 언급했다시피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평을 주기엔 좀 미흡하지만 수준 미달의 작품도 아니다. 요즘처럼 작품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시대에 이만하면 그럴 듯 한 축에 속한다. 비록 비슷하게 느껴지는 몇몇 작품을 짜집기한 느낌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짜집기 했다 치더라도 꽤나 융통성 있게 잘 버무렸다. 이 영화, 상당히 영리하다니까? ^^

혹시 학창시절 풋풋한 사랑을 해본 경험이 있으신가? 그럼 한 번 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최소한 아련한 감성 정도는 챙길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아, 더불어 귀를 호강시켜주는 음악들도.



덧 : 어디서 많이 본 여자들이 나온다 싶어도 당황은 금물. 절대 송윤아와 김태희가 아니다. ^^a

by 시니컬콩 | 2008/03/03 18:38 | Movie | 트랙백 | 덧글(0)

로스트 라이언즈 - 2007, 미국

(Thomas Cruise, Meryl Streep, Robert Redford)


차기 대통령을 노리고 있는 상원의원 어빙(Thomas Cruise 분)은 자신의 정치적인 야심을 위해 저널리스트 제니 로스 (Meryl Streep 분)에게 접근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글을 쓰도록 그녀를 조종하려고 한다. 전쟁을 기사화하며 그 안에서 명성을 쌓아가고 있는 그녀는 감추어진 진실과 상원의원 어빙이 던져주는 특종 사이에서 고뇌한다. 한편, 자신의 두 제자를 아프가니스탄으로 보낸 말리 교수(Robert Redford 분)는 또 다른 제자 토드를 불러 현실을 개혁하기 위해 그가 해야 할 일에 대해 말한다. 같은 시각, 어빙 의원이 제니 로스에게 설명하던 전략은 이미 아프가니스탄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승리만을 원했던 어빙의원의 전략은 결국 아프가니스탄의 오지에 두 청년을 고립되게 만들고, 이들은 생사의 기로를 넘나드는 사투를 벌이게 된다.
자신의 정치적 야심밖에 모르는 상원의원, 진실과 특종 사이에서 고뇌하는 저널리스트, 전쟁을 반대하는 이상주의자 교수, 그리고 그들의 세력싸움에 희생되는 젊은이들… 당신은 누구의 편에 서서 누구를 위해 싸우고, 누구를 위해 살며, 누구를 위해 죽을 것인가…



문득 든 생각이지만, 이 영화는 제작비가 그다지 많이 들진 않았겠구나 싶더라.; 처음부터 끝까지 매우 단조롭다. 아, 내용이 아닌 구성이.
이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단 세 곳으로 분할된다. 워싱턴 D.C의 제스퍼 어빙 상원의원(톰 크루즈 분)의 사무실, 캘리포니아 한 대학의 스티븐 멜리(로버트 레드포드 분) 교수의 사무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의 전쟁터. 물론 전쟁터가 나오긴 하지만 여느 전쟁영화들처럼 살 떨리게 무서운 전투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등장인물 또한 간략하다. 언급했던 두 사람에 ANX 방송국의 정치부 기자인 재닌 로스(메릴 스트립 분)와 멜리 교수의 제자인 토드, 그리고 역시 멜리 교수의 제자이자 아프가니스탄 파병군인 아리안과 어니. 이들이 전부다.
여섯 명의 등장인물들이 세 곳에서 따로따로 각자의 이야기를 엮어간다. 그러나 떨어져 있다 해도 유기성은 물론 존재한다. 주연배우들의 호연에 힘입어 굉장히 정적인 분위기인데도 불구하고 한데 뭉쳐 치고 박고 혈전을 벌이는 것보다 더 밀접한 관계와 긴장감이 형성된다.

이 영화는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엔 꽤나 버겁다. 주제 자체가 골 때린다. 이라크 사태, 아프가니스탄 사태, 911사태, 탈레반과 알카에다를 위시한 테러집단, 거기에 과거 베트남 전쟁까지 골고루 버무려져 있다. 국제 정세에 대한 정보나 관심이 없는 편이라면 정말 재미없고 따분할 수밖에 없는 영화다(그렇다고 내가 관심이 있느냐? 그건 결코 아니다. 난 오로지 레드포드 님에 대한 애정 하나로 봤다-_-;.). 거기다 요즘 젊은이들의 개인주의와 미국 내 인종차별에 대한 경고까지 살짝 양념으로 쳐놨으니 더하겠다. 보다보면 골치가 아프다 못해 뒤통수가 뜨끈해지는 느낌이다.

시작은 참으로 단순하다.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되어 있는 미군 부대에 새로운 작전 명령이 떨어진다. 전쟁에 있어서의 지리적 요충지를 선점하는 것. 그 작전이 성공 하면 미국은 승전국이 될 수 있을 것이고 대외적으로 땅에 떨어진 미국의 위신이 제 자리를 찾게 됨은 물론 미국 국민들의 자부심을 고취시킬 수 있을 것이다 등등, 명분은 여러가지. 당연히 반박이 나온다. 단지 그 명분을  좇기 위해 자국민을 얼마나 더 전쟁터로 내보내야 하느냐,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이 원론적으로 정당성을 가지느냐, 미국을 침범하지 않은 나라의 전쟁에 어째서 미국이 참전을 해야 하느냐, 과거 베트남 전쟁에서의 패배를 또 다시 반복해야 할 필요성이 과연 있는 것이냐. 애초 결론이 나기 힘든 논점을 두고 반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 작전을 지시한 한 정치가와 그의 제안으로 독점 취재를 맡게 된 기자 사이에 오가는 설전에 맞물려 실제 파병나간 두 군인이 적군에게 포위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이 주제는 논쟁의 씨앗이 되어버린다.
하나의 사태를 두고 여러 가지의 견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은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댈 만큼 위태롭다.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위해 언론조작을 감행하는 정치인, 특종이냐 언론인으로서의 양심이냐를 두고 갈등하는 기자.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인 것을 굳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내가 희생하는 것은 무모하고 쓸데없는 짓이라는 학생,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해도 희생하는 입장으로서는 무모함이 아닌 용기를 가진 것이라 설득하는 교수. 그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는 그 순간에도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젊은 군인들은 목숨을 잃어간다.

이 영화는 자칫 전쟁 반대를 외치는 단순한 주제로 치부 될 공산이 있다. 그러나 한 꺼풀 벗기고 보면 꼭 그렇다고 결론짓기가 조금은 애매하다. 자세하게 파고들자면 정치와 언론의 유착관계에 대한 비판이라든지 평화를 위한 전쟁의 필요성과 파병의 정당성 여부, 국가와 국민 사이에 주고받아야 할 의무와 권리 따위까지 한도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런 것들을 다 따지기엔 내 뇌 용량이 터무니없이 모자란 탓으로..; 그건 논외로 치겠다.
어쨌든 이런 저런 곁가지들을 다 쳐내고 남는 것은 의외로 간단명료하다. ‘나’라는 개인이 하기에 따라 세상은 어떤 식으로든 바뀐다는 것. 결국 이 영화는 국가라는 집단에서 빠져나온 개인들 사이에 만연한 이기주의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더 나아가 미국이라는 국가가 국제 사회에서 지금 어떠한 입장인지, 그 입장을 만들어낸 것은 결국 미국이고 그 미국을 구성하는 국민들이며, 그 국민들이 어떤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지까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스스로의 목숨을 희생하여 전쟁터에 뛰어든 두 젊은이를 통해 두루두루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국가를 위한답시고 또 다른 전쟁을 만들어내는 정치가도 순전히 개인적인 야심 때문이고, 그걸 한 눈에 알아보지만 보도를 해야 하느냐의 여부를 두고 고민하는 기자 역시 개인적인 명성에 대한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어쨌든 개인이 모여 한 집단이 형성되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니 어느 한 쪽에 무게 추를 싣는 것은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식의 논쟁이 될 수밖에. 국가가 네게 뭘 해줄 건지보다 네가 국가를 위해 뭘 할 수 있는 지를 생각해라, 였던가? 그 말에 묘한 당위성을 부여하는 느낌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저도 모르게 눈살이 좀 지푸려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 공산주의사상 같은 논리를 마냥 비난만 할 수는 없다는 게 속언저리에서 불편하게 걸리적거린다. 이러니 저러니 불만은 많아도 나 역시 국가라는 틀 안에서 살고 있는 소시민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정의다, 라는 식의 결론은 없다.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각자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채 끝을 맺는다. 확실히, 비판하기 좋아하는 아카데미가 눈독 들일 만한 주제고 그 주제를 다루는 방식 또한 아카데미의 구미에 딱 들어맞는다. 어쩌면 꽤 많은 수상을 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보는 쪽으로선 그다지 마음 편하지만은 않다. 파병이라는 문제만 해도 우리나라 역시 벗어날 수 없는 입장이다 보니 꼭 남의 나라 일이라거나 그저 영화일 뿐이라고 가볍게 생각해 넘기기엔 무리가 있으니까. 무엇보다 나 역시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어서? 라는 식의 고까운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우기기엔 켕기는 구석이 아주 많은 개인주의자고.
어쩐지 정말 닭과 계란의 우선순위를 심각하게 따져보게 될 것만 같다.


by 시니컬콩 | 2008/03/03 16:44 | Movie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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